명품 매장의 오픈런, 수천만원짜리 게임 아이템, 맛집의 예약.

 무엇을 얻고자 노력을 기울여본 경험은 꽤나 흔하다. 

 (최애의 콘서트, 팬미팅, 한정판, 한정판, 한정판….)

 명품을 들지 언정 맛집의 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말한다. 

 “뭐 저렇게까지 줄서서 먹어야할 맛일까?”

 맛집에 줄을 설지언정 수천만원짜리 게임아이템을 이해못하는 이는 일갈한다.

 “아니 먹지도 못하는 거에 무슨 돈을 저렇게 써?”

 빛나는 검을 든자 빛나는 가방을 든 자에게 고한다.

 “1년에 1조버는 회사가 1분기에 1조버는 회사한테 뭐라고 하냐??” (실제다…)

 저렇게 싸울지 언정 그들은 모두 같다. 왜냐. 종류는 다르지만 자신의 ‘만족’을 위하니 말이다.

 

  1. 마음에 흡족함
  2.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

 

 마음의 충분함, 혹은 모자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아에서 오는 것인가 비아에서 오는 것인가. 

 혹은 아에서 찾는 것인가 비아에서 찾는 것인가.

 

 바라건데 비아에서 찾는 이를, 구걸한다 욕하지는 마시라. 

 아에서 찾는 이를 무원에 갇혔다 비난하지 마시라.

 

 나의 삶도 그대의 삶도 끊임없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니 말이다.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긍정’에 대해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글쓰기 서포트 영상을 보고나서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긍정적 감정’에 대해 말하려니 생각이 조금 복잡해지네요 :)

 

저는 제가 자존감이 높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때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겪었을 때 그 일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요. 코로나때문에 보고 싶은 사람과 오랫동안 못보는 상황도 (채정호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상황을 인정하고 “금방 끝날거야” 하며 ‘긍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은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보통 말하는 ‘긍정적’ 감정을 저는 무조건 좋아하진 않아요. 세상엔 여러 감정이 있고,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 단계 더 성장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감정들을 접해봐야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수용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요. 그게 정말로 ‘긍정적인 감정’인 것 같아요.

 

 문득 나는 가을 냄새, 바람에 풀이 스치는 소리, 파아란 하늘과 같이 오감으로 느껴지는 자연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 미디어월, 질문을 던지는 의미있는 전시, 일관성있지만 새로운 도전을 마다않는 브랜드와 같은 예술 자극 또한 저를 행복하게 해요. 보고싶다는 친구의 카톡,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부모님의 전화는 저에게 따뜻한 위안을 줘요. 지나가다 우연히 본 고양이는 또 얼마나 귀여운지요!

 

 이처럼 세상에는 저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큰편이라 이 기복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건 참 다행이에요. 이 말은 즉 긍정 감정도 누구보다 크게 느끼는다는거에요. 공유해주신 세바시 강연을 보았습니다. 긍정은 좋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사전적 의미라는 것을요. 나쁜 상황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긍정이 아닌 망상이라고 하더라고요. 망상이라는 말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걸로 동의하는 바에요. 무언가를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저에게는 망상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긍정 감정이란 제게 ‘무언가를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자 ‘꿈과 낭만을 잃지 않는 법’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그 안에서 고민해서 이겨내는 것 보다 수용하지 않더라도 그저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꿈꾸며 살아가는 것이 제게는 긍정의 의미입니다.

 

 ‘슬픔’과 ‘우울’은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분명히 그 감정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타인과 함께 있으면 왜이렇게 드러내기 싫은지요. 함께있는 사람들에게 걱정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 타인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가족은 물론 친구들 모두에게 적용 됐는데요. 안타깝게도 이게 습관이되어 정말로 슬퍼해야할 때를 놓쳐버리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몇 년 뒤 이 부정 감정은 집채만한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어느 날은 우울감에 하루종일 힘없이 누워있다가도 또 어느 날에는 의욕이 너무 넘쳐 일주일간 잠도 안자며 생산적인 일을 하기도 했지요.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나날들이었어요. 안타깝게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감정을 더 더욱 수면 아래로 묻게 되었어요.

 

 그러다 작년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상했습니다. 질풍노도라는 무서운 소용돌이가 휩쓸어간 자리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없었어요. 오직 나만이 있었어요. 문득 나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온전히 감정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힘든 상황이 있어도 끝까지 혼자 해결하고 말았던  과거와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어요. 답답해도 참고 그냥 누르던 과거와 달리 참지 않고 잠깐 나와서 울다 들어가고 말이에요. 슬플 때 울고, 힘들 때 힘들다 말하기 시작하고 부터 저는 진짜 제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어요. 

 

 사람이라면 기침, 딸국질, 좋아함을 숨기지 못하는 것 처럼 부정 감정도 숨기지 않고 표현하니 한결 좋아요. 그래도 저는 긍정어의 힘을 믿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부정 감정을 얘기하고 ‘그래도 나아질 게 분명해!’ 혹은 ‘나는 짱쎄서 괜찮아!’라는 긍정어를 굳이 말하곤 해요. 그러니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투덜거리는 일도 적어졌어요. 역시, 나이는 시간의 흐름일 뿐 그저 투명한 어릴적의 나로 사는 게 가장 건강한 방법이에요.

 

기쁨 슬픔 화 사랑 질투 

서운함 행복 설렘 모성애/부성애 공감

 

사랑 슬픔 공감

사랑은 자주 느낀다기보다 항상 함께 하는 감정인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족과 애인, 친구들, 주변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있으니까.

슬픔은 이따금 느낀다. 그치만 슬픔을 느끼는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에게 꼭 있어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에 잠깐 쉼을 주고, 돌아보게 만드는 감정인 것 같다.

공감이 감정이 될 수 있을지 조금 망설였는데, 상대방의 감정을 내가 같이 느끼는 것이니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감은 자주 하려고 하는 편이다.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감을 잘 해야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가 원을 그려 슬픔이에게 나오지 말라고 할 때 굉장히 재수없었다. 공감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제 사람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느껴졌다. 사람들도 슬픈 분위기가 있는 사람은 꺼려하고, 항상 웃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이러한 현상은 데이팅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웃음을 강요한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람들이 더 슬퍼하고, 슬픈 일을 돌아보게 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다. 

특히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으레 말도 예쁘게 하고, 많은 위로가 되어주고, 자존감도 높은 것 같아서 그 사람 자체로 빛이 나는 경우가 많다. 참 닮고 싶은 점이다. 

모든 감정들이 다 중요하고 내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야 감정 해소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4주간 내 감정을 잘 들여다봐야겠다.

 

올해의 질문’이 발표될 전망이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논의를 마쳤으며,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유수의 석학들이 예견한 질문이 꼽힐지 귀추가 주목된다. 발표는 이번 달 중순에 이루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시작부터 개소리다. 하지만 생각은 해보자. 올해의 질문이 있다면 무엇일까.

 “MBTI가 뭐에요?”

 

 인간 군상을 16가지로 표현한 알파벳 여덟개가 다시금 많은이들에게 관심을 받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오늘의 운세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이 12간지에서 16유형으로 변했으니, 네 가지 만큼은 발전한건가 싶기도 하다. 오히려 운세, 사주 같은 것들이 스스로를 배제하며 길흉화복을 점쳤다면 MBTI는 자신을 정의하고  조화를 고민하니, 방점의 균형이 바뀌었다 말할수는 있으렸다.

 

 “움직여..!”

 영화 ‘킬빌’을 보면, 부상 당한 주인공이 발가락 하나를 겨우 움직이며 말하는 장면이 있다. ‘자각’은 발가락 같은 말단의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고 칼을 휘두르는 그의 움직임처럼 ‘나’는 서서히 커간다. 스스로 존재를  ‘자각’하는 때, 자신의 상이 군상속에 어디쯤 속해있는지를 깨달을때야말로 군집속에 하나의 유기체 혹은 사회적 인간으로 삶을 영위하는 주체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아무리 ‘부캐’가 유행이라지만 운영은 ‘본캐’가 할테니까. 그 순간을 어떻게 찾는지 찾아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내게 아래의 조건은 중요하다

1. 적당한 맛과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의자가 있는 공간

2. 여유로운 시간, 여유로운 누군가와 보내는 여유로움

3. 모르는 것을 모르는채로 알려드는 모름

4.  어느 도시에서든 1,2,3항을 하며 비슷한 짓을 하고 있을 때)

 

메아리도 소리를 쳐야 돌아오니 말이다.

 

  1.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잘 다가가고, 밝고 편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사실은 우울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우울함의 이유는 주로 버림받을 것 같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 내가 우울한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고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걱정, 내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면 나를 쓸모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다는 걱정 같은 것들이 가끔씩 나를 갑작스럽고 엄청 깊은 우울로 몰아넣는다. 
  2. 혼자 있을때 이런 우울에 잠기면 혼자 울고 나면 그만인데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 이런 기분이 들면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가 더 못나게 느껴진다. 그래서 웬만하면 더 밝고 활발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요즘에는 어차피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다 라는 점을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면 사랑받기 위해 이전과 비슷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사랑받지 못할까봐 걱정이 항상 앞선다.

 

부정적 감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내가 부정적 이야기를 하고 행동한다면 다른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고 흰 종이에 먹물이 뛰듯 하얀 그 곳을 오염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정적 감정은 집에 가는 길에서 혹은 나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집안에서만 드러냈던 것 같다. 요즘은 마스크가 내 얼굴을 반이나 가려줘 가끔 밖에서도 티안나게 표현하고는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항상 나에게 부정되어야 하는 감정이었다. 

 

다른 사람의 슬픔크기가 얼마나 크고 깊어도, 나의 슬픔이 더 크다고 느끼는 인간인지라 내가 여유가 없고 내 슬픔에 빠져 있을 때면 다른 사람의 슬픔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했는지 의문이다. 내 슬픔 속에 빠져서 틈이 없었다. 

 

부정적 감정은 쌓아 두기만 하면 슬픔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깊어질텐데, 그러면 난 더 다른 사람을 쳐다볼 여유가 없이 허덕이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뭐든지 적당한게 중요한데 그 기준을 잘 모르겠다. 부정적 감정을 어디까지 누구에게 얼마만큼 표현하는 것이 좋은걸까?

 

[신남 행복 뿌듯함 성취감 기대 사랑 불안 지침 답답함 걱정] 

떠오르는 감정 10가지를 나열하며 이번주를 복기하게 됩니다. 순서 상관없이 최근 많이 느낀 감정이었네요. 유독 불안, 성취감, 기대 이 세 감정을 휘몰아치듯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세 가지 감정을 평소 자주 느꼈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그렇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한 감정은 인간이 생존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심리학 영상을 본적이 있어요. ‘불안’은 부정 단어일뿐,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늘 저를 발전하게 해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새벽에 자주 깨있곤 했어요. 이 긴 밤에 저는 동그란 공 위에, 세모난 돌 위에, 마름모 조각 위에, 한발로 서있는 느낌이었어요. 마치 서커스단 처럼요. 평소의 곱절로 느낀게 문제였죠. 이 감정은 자극적인 야식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성취감이라는 리워드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베스킨라빈스의 슈팅스타와 같은 이 짜릿한 감정이 불안과는 다른 결로 제 원동력이 되어주었어요. 물론, 적당히 매몰되고자 했어요. 그래도 반복되니 자꾸만 기대가 됐습니다. 매년 다른 마음으로 보다 괜찮은 미래를 꿈꾸고 있으니 말이에요.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저는 계속해서 한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닌 빈도다! 작더라도 자주 자주 행복하고자 했어요. 그렇게 버텼던 일주일이었습니다.

 

내가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외로움”인거 같아요.

저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사적이든 일적이든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이야기 듣고 이런 시간들이 너무 좋아요.

 

그러다 저녁에 혼자 있게되면 괜히 외로워지는거 같아요. 또 저는 저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밝게 지내려고 하는거 같아요. 누군가가 저의 잠시 잠깐 스쳐간 얼굴표정을 보고 기분을 물어보면 저는 아무일도 없던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하죠(약간 가식같기도하네요...쓰다보니)  언젠가부터 부정적인 감정은 표현을 안하게 되는거 같아요.

이런 감정들이 나쁜건 아닌데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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