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매장의 오픈런, 수천만원짜리 게임 아이템, 맛집의 예약.

 무엇을 얻고자 노력을 기울여본 경험은 꽤나 흔하다. 

 (최애의 콘서트, 팬미팅, 한정판, 한정판, 한정판….)

 명품을 들지 언정 맛집의 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말한다. 

 “뭐 저렇게까지 줄서서 먹어야할 맛일까?”

 맛집에 줄을 설지언정 수천만원짜리 게임아이템을 이해못하는 이는 일갈한다.

 “아니 먹지도 못하는 거에 무슨 돈을 저렇게 써?”

 빛나는 검을 든자 빛나는 가방을 든 자에게 고한다.

 “1년에 1조버는 회사가 1분기에 1조버는 회사한테 뭐라고 하냐??” (실제다…)

 저렇게 싸울지 언정 그들은 모두 같다. 왜냐. 종류는 다르지만 자신의 ‘만족’을 위하니 말이다.

 

  1. 마음에 흡족함
  2.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

 

 마음의 충분함, 혹은 모자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아에서 오는 것인가 비아에서 오는 것인가. 

 혹은 아에서 찾는 것인가 비아에서 찾는 것인가.

 

 바라건데 비아에서 찾는 이를, 구걸한다 욕하지는 마시라. 

 아에서 찾는 이를 무원에 갇혔다 비난하지 마시라.

 

 나의 삶도 그대의 삶도 끊임없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니 말이다.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슬픔’과 ‘우울’은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분명히 그 감정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타인과 함께 있으면 왜이렇게 드러내기 싫은지요. 함께있는 사람들에게 걱정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 타인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가족은 물론 친구들 모두에게 적용 됐는데요. 안타깝게도 이게 습관이되어 정말로 슬퍼해야할 때를 놓쳐버리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몇 년 뒤 이 부정 감정은 집채만한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어느 날은 우울감에 하루종일 힘없이 누워있다가도 또 어느 날에는 의욕이 너무 넘쳐 일주일간 잠도 안자며 생산적인 일을 하기도 했지요.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나날들이었어요. 안타깝게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감정을 더 더욱 수면 아래로 묻게 되었어요.

 

 그러다 작년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상했습니다. 질풍노도라는 무서운 소용돌이가 휩쓸어간 자리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없었어요. 오직 나만이 있었어요. 문득 나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온전히 감정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힘든 상황이 있어도 끝까지 혼자 해결하고 말았던  과거와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어요. 답답해도 참고 그냥 누르던 과거와 달리 참지 않고 잠깐 나와서 울다 들어가고 말이에요. 슬플 때 울고, 힘들 때 힘들다 말하기 시작하고 부터 저는 진짜 제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어요. 

 

 사람이라면 기침, 딸국질, 좋아함을 숨기지 못하는 것 처럼 부정 감정도 숨기지 않고 표현하니 한결 좋아요. 그래도 저는 긍정어의 힘을 믿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부정 감정을 얘기하고 ‘그래도 나아질 게 분명해!’ 혹은 ‘나는 짱쎄서 괜찮아!’라는 긍정어를 굳이 말하곤 해요. 그러니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투덜거리는 일도 적어졌어요. 역시, 나이는 시간의 흐름일 뿐 그저 투명한 어릴적의 나로 사는 게 가장 건강한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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