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기회가 생겨 에니어그램 검사를 받았는데, 진행해주시던 강사님이 해주신 얘기가 있습니다. 에니어그램 유형은 크게 ‘가슴 중심/머리 중심/장 중심’으로 나뉘는데, 각자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달라요.  감정과 정서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가슴’ 유형의 사람들에게 사랑은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인 반면, 항상 논리적이고 사고적인 ‘머리’ 유형의 사람들은 상대에게 확신이 생겨야 비로소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본능을 중추로 움직이는 ‘장’ 유형에게 사랑이란 존재로서의 존중과 인정이라고 합니다.

결과와 자세한 해석을 듣고 나니 전부 내 얘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 맞는 검사였고, 저는 ‘장’ 유형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번 시작된 사랑이 오래 이어지기 위해서는 감정도, 확신도, 존중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노팅힐>의 마지막에서 두 주인공이 정말 영화처럼 이어지기 전까지는 서로의 감정이 밸런스가 맞지 않거나, 이 사람에게 내가 어울리는 사람인지 내가 곁에 있어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안나는 자신을 그저 한 사람의 여자로서 바라봐주길 바랐지만 윌리엄은 받아들이지 못했고요.

사랑에도 심리테스트처럼 정해진 유형만 있다면 세상의 수많은 소개팅은 좀더 수월했을 거고, 세상이 무너지는 가슴 아픈 이별도 없고, 우연히 부딪혀 사랑이 시작되는 소설같은 로맨스도 없었을 거예요. 뒤돌아 생각해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우연이 겹치면서 사랑이 싹텄고, 또 크고 작은 오차를 겪어나가면서 사랑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 사랑은 로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로또도 내가 사서 질러봐야 당첨이 되는 것처럼, 내가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유형이건 상관없이 마음의 문을 열고 만나다 보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와 확률을 뚫고 언젠가는 로또 맞을 거예요. 마무리가 좀 이상하지만 우리 모두 로또(?) 화이팅!

 

설레는 로맨틱 영화로 손꼽히는 노팅힐. 명언이나 가고 싶은 장소 소개로 많이 봤어도 영화는 최근에야 처음 보게 됐다. 탑스타와의 연애라니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하면서도 진짜 비현실적이다. 

 

아무튼 ……… 사랑의 정의라니….. 질문 너무 어렵습니다……

사랑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까먹고 영화를 다 보고 다시 인물들과 대사들을 생각해봤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관심이 느껴지던 장면들에는 모두 질문들이 있었다. 오늘 밤 시간 있는지, 친구의 기분이 괜찮은지,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사장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커피를 사다 줄지, 하다못해 기자회견에서도 애나에 대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에게도 밥은 먹었는지, 뭐하는지 물어보고 계속 궁금해진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이 식었는지가 느껴질 때는 나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였던 것 같다. 쓰다 보니 지금은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해주는 사람, 항상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하고 응원해주는 사람과 함께라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밤.

 

가끔 이성과의 사랑은 영 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건 남이 아닌 저 자신인걸 알면서도 자꾸만 욕심 부리게 되니까요.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새로운 나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울컥 올라오고, 자꾸만 어설프니까요. 그런데 때로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의 크기만큼 나의 파이를 내어주는 행복이 있으니 말이에요.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부터가 참 기쁜 일인데 그게 사랑이라면 더더욱이지요. 

 

추천해주신 노팅힐 영화를 보았어요. 실은, 두 번 시도해서 끝까지 보았습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지 않아 아무래도 더 담담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음.. 맞아요. 사랑은 늘 미묘한 시간 사이에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사랑을 정의하라고 하신다면, ‘타이밍’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감정이 쏟아지지만, 괜한 감정이라며 아끼려고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요. 때로는, 그 타이밍에 그 사람과 만났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사랑을 하면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많이 배우고 영향받으니 말이에요. 투명하고 단순한 마음과 꼬불 꼬불 엉켜있는 생각들이 충돌을 하는 밤이네요. 문득 요즘 좀 사랑을 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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